
요즘 뉴질랜드 뉴스에서는 남극 빙하가 얼마나 빨리 녹고 있는지에 대한 보도가 자주 나온다.
남극은 멀리 떨어진 곳 같지만, 사실 뉴질랜드와는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대륙이다.
비행기로 몇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을 만큼 멀지 않다.
얼마 전 우리 교회에 다니는 한 과학 선생님이 정부 지원을 받아 교육 목적의 남극 탐험에 다녀오셨다.
그분은 탐험 중 찍은 사진과 생활 모습을 교회에서 나눠주셨는데,
정말 놀랍고 동시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그곳은 상상 이상으로 혹독했다.
수십 겹의 옷을 껴입고 밖에 나가야 했고,
얇은 티셔츠를 잠깐 바깥에 내놓기만 해도 단단하게 얼어붙어버렸다고 한다.
밤에는 여러 겹의 침낭 속에 파묻혀 자야 했고,
심지어 소변은 침낭 안에서 컵에 해결해야 할 정도로 추웠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정말 사람의 한계를 시험하는 곳이구나.”
하지만 그보다 더 충격적인 건,
그분이 직접 찍어 온 남극의 빙하와 동물들의 현실이었다.
바다 표면이 점점 녹으면서 바다곰과 바다표범은 사냥터를 잃고,
펭귄들은 알을 낳을 안전한 얼음 터전을 찾지 못해 힘들어하고 있었다.
빙하가 녹아내리며 그들의 생태계 전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 사진들을 보고 있자니,
그건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었다.
바로 우리가 사는 뉴질랜드와도 이어진 문제였다.
뉴질랜드는 오래전부터 친환경 정책에 앞장서온 나라다.
몇 년 전부터는 모든 대형 슈퍼마켓에서 비닐봉지 사용이 전면 금지되었다.
정부는 ‘플라스틱 제로’를 목표로 다양한 캠페인을 펼치고 있지만,
이것이 하루아침에 해결될 일은 아니다.
편리함에 익숙해진 우리의 생활 속에서
플라스틱과 일회용품을 완전히 없앤다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우리 교회에서도 목사님은 예배 때마다 종종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주신 창조세계를 지키는 건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그 말씀에 따라 몇 년 전부터 교회 내에서도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재사용을 실천하려는 운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쉽지 않다.
가정에서도 도시락을 쌀 때마다 고민이 된다.
“쿠킹호일, 크린랩 없이 샌드위치를 어떻게 싸지?”
요즘은 Beeswax Paper(밀랍랩) 으로 대체하자는 움직임이 있지만,
솔직히 아직은 완벽히 깨끗하거나 편리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금씩 바꾸려 한다.
불편하지만, 지구를 위해 감수해야 할 작은 불편함이라고 생각한다.
웰링턴의 날씨는 요즘 들어 더욱 변화무쌍하다.
아침엔 해가 반짝 떴다가 오후엔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고,
이내 무지개가 걸리는 도시.
그 변화무쌍한 하늘을 보며 나는 문득 생각한다.
“이건 단순한 날씨 변화가 아니라, 지구가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일지도 몰라.”
뉴질랜드 기후청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0년 동안 평균 기온이 1.1도 이상 상승했다고 한다.
그 ‘1도’는 빙하에는 생사를 가르는 온도다.
남극의 얼음이 녹으면 바닷물은 상승하고,
남섬 남쪽의 작은 마을들은 매년 침수 피해를 겪고 있다.
그곳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올해는 작년보다 바다가 조금 더 가까워졌어요.”
그 말이 내 마음을 콕 찌른다.
며칠 전, 초등학생인 우리 아이가 말했다.
“엄마, 펭귄들이 얼음이 녹아서 살 곳이 없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쩌면 이것이 **‘기후 감수성’**이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단순히 ‘날씨가 달라졌다’는 것이 아니라,
그 변화가 생명에게 어떤 의미인지 느끼는 마음.
나는 간호사로 일하면서 자주 느낀다.
환자의 열, 숨소리, 몸의 변화는 다 신호다.
지구도 마찬가지다.
요즘의 폭염, 홍수, 태풍, 산불은
“이제는 그만 좀 쉬게 해줘.”라고 말하는 지구의 신호인지도 모른다.
며칠 전 가족과 함께 웰링턴 해변을 걷다가
아이들이 돌 위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모습을 보았다.
그 순간 나는 조용히 기도했다.
“하나님, 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푸르고 안전하게 남아 있게 해주세요.”
기후 감수성이란 거창한 운동이 아니다.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사랑하는 마음,
작은 생명 하나에도 마음이 움직이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웰링턴의 바람은 세차게 분다.
그 바람 속에서 나는 묵상한다.
지구가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되자.
그리고 내 아이에게 조용히 말해주고 싶다.
“지구는 우리가 함께 돌보는 집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