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한국에서의 직업, 그리고 뉴질랜드로의 이민
저는 한국에서 방사선사로 근무하며 병원 영상의학과에서 일한 의료인이었습니다. 대학에서 방사선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에는 초음파, CT, MRI, 유방촬영 등 다양한 장비를 다루며 환자 진단을 돕는 일을 했습니다. 의료 현장은 언제나 긴장감이 있었고, 정확한 검사 결과가 환자의 치료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에 순간의 집중력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환자를 도우며 보람을 느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진료 과정에서 환자와 직접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시간이 짧다는 아쉬움도 늘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뉴질랜드 이민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나라에서의 삶은 기대와 두려움이 공존했어요. 한국의 자격증이 뉴질랜드에서 바로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학교를 다녀야 했습니다. 처음엔 막막했지만, 의료인의 경험이 있었기에 완전히 낯설진 않았습니다. 뉴질랜드는 의료 시스템이 잘 정비되어 있고, 간호사가 중심적인 역할을 맡는 나라라는 점이 마음을 끌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새로운 길을 선택했습니다 — 바로 “간호사”로 다시 공부하는 것이었습니다. 방사선사에서 간호사로의 전환은 제 인생에서 가장 큰 도전이자, 새로운 성장의 시작이었습니다.
2. 휘티리아 폴리텍(Whitireia Polytechnic)에서의 간호학 공부
제가 간호학을 공부한 곳은 웰링턴에 위치한 **휘티리아 폴리텍(Whitireia Polytechnic)**입니다. 지금은 Whitireia and WelTec으로 통합되었지만, 여전히 뉴질랜드 남섬과 북섬 전역에서 인정받는 간호 교육기관입니다. 휘티리아의 Bachelor of Nursing(간호학 학사) 과정은 3년제이며, 국제학생과 현지 학생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
1학년에는 해부학, 생리학, 간호술, 의학용어, 커뮤니케이션 등 기초 간호 지식을 배웁니다. 2학년부터는 병원 실습이 시작되어 실제 환자를 돌보며 경험을 쌓게 됩니다. 3학년은 심화 과정으로, 리더십, 임상 판단, 전문 간호 역할 등을 배우며 RN(Registered Nurse) 자격 취득을 준비합니다.
학비는 국제학생 기준 연간 약 NZD 25,000~28,000 정도이며, 3년 과정 전체로 보면 약 75,000~85,000뉴질랜드달러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학교에서 제공하는 장학금 기회나, 파트타임 근무를 병행하는 학생도 많습니다.
저는 휘티리아의 교육방식이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단순히 이론 위주가 아니라, **문화적 안전(Cultural Safety)**과 **환자 중심 돌봄(patient-centered care)**을 강조합니다. Māori(마오리) 문화 이해, 다양한 인종에 대한 존중, 의료 윤리 교육까지 포함되어 있어, 사람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서의 배움은 제 간호사로서의 가치관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3. 공부는 쉽지 않았지만, 배움은 즐거웠던 시간
의료 배경이 있었던 덕분에 해부학이나 질병 이해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진짜 어려움은 **에세이와 리포트 과제(Assignments)**였습니다. 뉴질랜드 간호학교에서는 단순한 필기시험보다 **논리적 사고와 비판적 글쓰기(critical thinking)**를 중시합니다. 매 과목마다 에세이, 리플렉션, 리서치 리포트, 케이스 스터디를 작성해야 했어요. 특히 APA 스타일의 참고문헌 인용법은 처음 접했을 때 정말 헷갈렸습니다.
저는 밤마다 도서관에 앉아 사전과 참고서적을 뒤지며 영어 문장을 다듬었습니다. 문법 실수를 줄이기 위해 친구와 함께 교정 연습을 하고, 교수님께 피드백을 받아 수정하며 조금씩 발전했습니다. 처음엔 한 문장 쓰는 데 10분 이상 걸렸지만, 나중엔 제 생각을 영어로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 과정은 정말 힘들었지만, 동시에 저를 성장시킨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공부를 통해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지금은 그때의 훈련 덕분에, 환자 교육 자료를 만들거나 전문 리포트를 쓸 때도 자신감이 있습니다. “글을 쓰는 간호사”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그 시절의 끈기와 노력 덕분이었습니다.
4. 실습을 통해 느낀 진짜 간호의 의미
간호학의 핵심은 **실습(Clinical Placement)**입니다. 휘티리아에서는 요양원(rest home), 병원 병동, 커뮤니티 클리닉, 정신건강 센터 등 다양한 환경에서 실습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처음엔 낯선 환경과 영어권 환자들과의 대화가 두려웠지만, 실습이 거듭될수록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지역사회 간호 실습(Community Nursing)**이었습니다. 환자를 단순히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의 질을 높이고 자립을 돕는 과정이었어요. “간호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돌보는 일”이라는 것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또한 뉴질랜드 간호는 팀워크 중심이어서, 의사, 사회복지사, 물리치료사 등 다양한 전문가와 협력하며 일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이 실습을 통해 저는 진짜 ‘간호사’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환자의 통증을 줄이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의 감정과 가족 관계까지 이해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까지 치유하는 일이 간호의 본질이라는 걸 배운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5. 지금 돌아보면 – 도전의 길이지만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저는 웰링턴에서 **Registered Nurse이자 Community Nurse Prescriber(커뮤니티 처방 간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설 수 있었던 건, 꾸준히 배운 덕분입니다.
뉴질랜드에서 간호사가 되는 길은 분명 쉽지 않습니다. 영어 장벽, 학비, 문화적 차이, 그리고 에세이 과제까지 모두 낯설죠. 하지만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간호는 나이와 국적에 상관없이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처음엔 두려웠지만, 저는 그 두려움을 배움으로 바꿨습니다. 지금은 뉴질랜드 사회 속에서 지역 주민들을 돌보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간호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길을 고민하는 분들께 말하고 싶습니다.
“완벽할 필요는 없습니다. 진심으로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마음이 결국 당신을 간호사로 만들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