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 웰링턴에서의 삶, 그리고 다시 느낀 뉴질랜드의 소중함

by wellingtonnurse 2025. 10. 13.

웰링턴 케이블카 전경 사진

 

 

 

 

2000년에 처음 뉴질랜드에 왔을 때, 모든 게 낯설고 조용했습니다.
처음엔 오클랜드에서 몇 년을 살다가, 2004년 웰링턴으로 내려와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죠.
전반적으로 뉴질랜드는 정말 고요한 나라예요.
그 고요함이 이제는 익숙하지만, 처음엔 많이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땐 모든 상점들이 오후 5시만 되면 문을 닫았어요.
저녁 시간이 되면 불빛이 꺼지고, 고작 문을 여는 곳은 술집과 펍 정도.
슈퍼마켓도, 쇼핑몰도 모두 닫혀버려서
퇴근 후 장을 보거나 쇼핑을 한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죠.

특히 첫 크리스마스 때는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친구들과 함께 시내에 나왔는데, 버스가 전혀 다니지 않았던 거예요.
특별 운행으로 한 시간에 한 대 정도, 그것도 제한된 시간만 운행하더군요.
슈퍼마켓조차 모두 문을 닫아서, 미리 장을 보지 못한 우리는 정말 난감했어요.
그때의 당황스러움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오클랜드도 조용하고 한적하다고 느꼈는데,
웰링턴은 그보다 더 조용했습니다.
도시라기보단 작은 마을 같았죠.
사람들은 순박하고 정직했지만,
당시의 제 눈엔 조금은 ‘촌스럽다’고 느껴지기도 했어요.
어딜 가도 사람보다 바람이 먼저 반겨주던 도시,
그게 바로 웰링턴이었습니다.

아이가 없던 시절엔 정말 매일같이 남편에게
Soooooo boring!
을 외치곤 했어요.
오늘이 내일 같고, 내일이 모레 같은 하루하루.
변화가 없는 단조로운 날들이 지루하게 느껴졌죠.

그러다 간호학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제 삶도 조금씩 달라졌어요.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의미를 찾아가기 시작했달까요.
쌍무지개가 하루가 멀다 하고 나타나는 하늘,
너무나 흔한 자연의 풍경,
깨끗한 공기 속에서 살다 보니
그 소중함을 잊은 채 지내왔던 것 같아요.

한국에서 가족들이 오면 항상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공기 좀 봐, 미세먼지가 하나도 없어!
그 말이 그땐 와닿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번에 호주로 짧은 여행을 다녀오면서,
비로소 뉴질랜드의 공기와 사람, 이 모든 게 얼마나 특별한지 깨달았습니다.


🇦🇺 호주 여행이 남긴 생각

며칠 전 가족과 함께 다녀온 골드코스트 여행은 정말 꿈같았어요.
날씨도 좋고, 해변도 아름답고, 도시의 활기와 규모가 부러웠습니다.
호주는 나라가 크고 경제도 좋고, 월급도 뉴질랜드보다 훨씬 높아요.
그래서 많은 뉴질랜드 사람들이 호주로 이주하죠.
저 역시 그곳에서 멋진 경관을 보며
혹시 우리도 호주로 이민을 가볼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습니다.

하지만 1주일을 지내면서 느꼈어요.
호주가 멋지긴 해도, 사람들의 분위기나 태도는 뉴질랜드와는 달랐습니다.
트램 안에서 13~15살쯤 되어 보이는 소녀들이 남편의 핸드폰에
자신들의 폰을 가까이 대며 장난을 치는 일이 있었는데,
이해할 수 없고 무서웠어요.
What are you doing?” 하고 소리쳤지만,
그 아이들은 “I didn’t do anything.” 하며 비웃듯 웃었죠.
그 상황에서도 아무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뉴질랜드였다면 주변 사람들이 분명히 한마디씩 했을 거예요.

또한 카페나 음식점에서 만난 젊은 한국인들 대부분이
워킹홀리데이로 일하러 온 친구들이었어요.
그들의 얼굴에는 밝음보다 피곤함이 묻어 있었어요.
예전에 제가 20살 때 시드니에서 두 달간 워킹홀리데이로 지낼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거든요.
젊은 노동자들을 값싼 인력으로만 대하는 주인들,
그 속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이번에 만난 아이들도 혹시 그런 일을 겪고 있는 건 아닐까,
왠지 모르게 짠한 마음이 들었어요.


🥀 다시 느낀 웰링턴의 소중함

골드코스트의 햇살 아래선
모든 게 화려하고 멋져 보였지만,
1주일이 지나고 돌아오는 길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 나는 뉴질랜드가 좋다.

웰링턴의 하늘은 여전히 변덕스럽고,
한여름에도 23도를 넘기 힘든 날씨지만,
이곳 사람들의 순수함과 따뜻함만큼은
어디에서도 쉽게 찾을 수 없는 보석 같은 가치예요.

조용하지만 정직하고, 단조롭지만 편안한 도시.
20년 넘게 살아온 이곳은
이젠 제 삶의 일부가 되어버렸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가끔 다른 곳의 화려함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결국 마음이 향하는 곳은 늘 웰링턴,
제가 살아가는 조용한 뉴질랜드의 작은 수도입니다.